
[KCSB 김정훈기자] 경기장에 들어선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었지만, 대회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었다. 규칙을 지키는 것,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지난 9월 5일부터 6일까지 천안에서 열린 ‘2026 충남청소년 학교폭력예방 무예대회’ 현장을 K문화체육신문방송 취재진이 직접 지켜봤다.
첫날 백석대학교에서는 레슬링 경기가 진행됐고, 둘째 날 남서울대학교 성암문화체육관에서는 태권도 품새와 격파, 스피드 발차기, 줄넘기 등 다양한 경연과 개회행사가 이어졌다.
대회는 한국청소년보호연맹 천안지회가 주최·주관하고 충청남도와 천안시, 충청남도교육청이 지원했다. 행사 자료에는 총예산 3,600만원, 도비 1,800만원과 시비 1,800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승패보다 먼저 등장한 ‘선서’
개회식에서 눈길을 끈 장면 가운데 하나는 선수대표 선서였다.
청소년 선수들은 대회 관계자와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른손을 들고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회 책자와 프로그램 전반에도 ‘강함’을 단순한 물리적 힘과 연결하지 않으려는 메시지가 반복됐다.
김은성 대회장은 행사 자료에서 청소년들에게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힘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절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호하며, 불의 앞에서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본지가 현장에서 확인한 대회 구성 역시 이런 방향에 맞춰져 있었다.
경기는 승패를 가렸지만 선수대표 선서와 심판대표 선서, 초청공연, 시상, 단체행사 등이 함께 진행됐고, 경기장 주변에서는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들이 종목과 소속을 넘어 어울리는 모습도 이어졌다.

“학교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회의 또 다른 특징은 학교폭력 예방을 학교 내부의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사 책자에 수록된 축사에서도 학교와 가정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현장에는 이병도 충남교육감과 엄소영 천안시의회 의장 등 교육·지역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병도는 2026년 7월 제19대 충청남도교육감에 취임했으며, 천안시의회 공식 홈페이지도 현재 엄소영 의장을 제10대 의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박수현 충남도지사와 장기수 천안시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 대회를 축하해주었다.
장 시장의 서면 축사에는 학교폭력 예방이 학교와 가정만의 몫이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이라는 취지가 담겼다.

무예는 ‘싸우는 기술’인가, ‘자신을 통제하는 교육’인가
이번 대회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무예를 배우는 것이 실제로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단순히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2026년 발표된 아동·청소년 대상 무예 훈련과 공격성에 관한 체계적 문헌 고찰은 11개 종단·중재연구를 분석했지만, 무예훈련이 청소년의 공격성을 일관되게 감소시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연구 결과는 종목과 훈련방식, 지도방법, 교육목표에 따라 달랐다. 다만 자기조절, 감정조절, 또래관계와 같은 요소가 중요한 변수로 반복해서 제시됐다.
이 연구 결과는 오히려 이번 대회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청소년에게 격투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가치와 함께 가르치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규칙과 예절, 비폭력, 감정조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실제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무예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3,600만원 예산…‘행사 개최’ 이후가 더 중요
이번 대회에는 행사자료 기준 총 3,600만원의 도비·시비가 투입됐다.
공공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평가의 기준 역시 단순한 참가 인원이나 대회 개최 여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내걸었다면 향후에는 참가 청소년의 학교폭력 인식 변화와 갈등 대응방식, 자기조절 및 또래관계 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전·사후 설문이나 후속 프로그램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대회가 하루 이틀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체육관, 가정으로 이어질 때 사업의 의미도 분명해질 수 있다.
행사 자료에 수록된 연혁을 보면 주최 측은 2023년 이후 학교폭력예방 청소년 무예대회와 청소년 역사문화탐방 등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건은 ‘몇 회 개최했느냐’가 아니라, 참가했던 청소년들에게 어떤 변화가 남았는지를 어떻게 확인하고 축적할 것인가에 있다.

레슬링부터 줄넘기까지…‘함께하는 스포츠’로 범위 넓혀
이번 대회는 전통적인 무예 종목에만 머물지 않았다.
태권도 품새와 격파, 스피드 발차기를 비롯해 레슬링과 줄넘기 등이 포함됐고, 학부모 번외경연과 태권도 시범공연 등도 프로그램에 배치됐다.
이는 특정 무술의 우열을 가리는 전문선수 대회보다는 청소년과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생활체육·교육행사의 성격을 강화한 구성이다.
특히 9월 5일 백석대학교에서 열린 레슬링 행사에는 어린 선수부터 청소년, 지도자와 대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학교폭력 예방, 결국 경기장 밖에서 완성된다
이틀 동안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상대와 맞섰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취지를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진짜 시험은 경기가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주먹보다 대화를 먼저 선택하는가.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대신 보호할 수 있는가.
분노했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학생이 괴롭힘을 당할 때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가.
무예대회의 성패는 결국 메달 수가 아니라 이런 행동이 일상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기합과 땀, 그리고 경기 후 서로에게 건넨 인사가 단순한 체육행사의 한 장면에 머물지 않고 학교생활 속 존중·절제·배려의 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